장윤정의 ‘초혼’을 들으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다
노래가 불러오는 어머니의 얼굴

살다 보면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을 울리는 노래가 있다.
나에게는 장윤정이 부르는 ‘초혼’이 그런 노래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에 묻어 두었던 그리움이 밀려오고,
어느새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자식들을 키우고 뒷바라지하느라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누리지 못하셨던 분이다.
자식들이 잘되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었고,
그중에서도 막내인 나에 대한 걱정이 유난히 많으셨다.

그때는 어머니의 걱정이 때로는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보니 알 것 같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에게는 언제나 걱정스럽고 마음이 쓰이는 존재였다는 것을 말이다.
장터를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머니를 따라 시내 장터에 다니던 기억이 먼저 생각난다.
어머니 손을 따라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일,
장터의 여러 가게를 기웃거리며 신기해하던 일들이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 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선물을 사 오셨다.
어린 마음에는 어머니가 어렵게 마련하신 선물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때로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사 달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아들이었다.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아끼고 절약하면서 자식들을 위해 애쓰셨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어머니는 늘 우리 곁에 계시는 분이고,
필요한 것을 말씀드리면 어떻게든 마련해 주시는 분이라고만 생각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공부하고 숙제해야 할 시간에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늦게 들어오면 어머니께 크게 혼이 났다.
그때는 야단맞는 것이 싫어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것이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그 시절에는 몰랐다.
혼내는 마음 뒤에도 사랑이 있었고,
잔소리 속에도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모든 자식의 마음속에 살아 계신 어머니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무엇을 바라셨을까?
아마도 큰 부자가 되거나 남들보다 특별하게 살기를 바라셨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건강하게 자라고, 제 앞가림을 하며,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늘 뒤늦게 깨닫는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제대로 알지 못하다가,
더 이상 곁에 계시지 않을 때 비로소 그 빈자리를 실감한다.
어머니는 한 사람의 어머니이면서 모든 자식에게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힘들고 지칠 때면 문득 어머니가 그리워지고,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따뜻한 위로를 어머니에게서 찾게 된다.
나 역시 그렇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의 내 모습을 보시며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여전히 막내 걱정을 하시면서 잘 지내고 있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물으셨을 것 같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그 말씀들이 그립기만 하다.
‘초혼’을 들으며 흘리는 눈물
장윤정의 ‘초혼’을 듣다 보면
떠나간 사람을 부르는 간절한 마음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단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나에게 그 노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어머니 산소에도 제대로 찾아뵙지 못하는 내 모습이 떠오르면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살아 계실 때 더 잘해 드리지 못한 아쉬움도,
이제는 찾아뵙고 싶어도 마음처럼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모두 내 몫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언젠가 더 잘해 드릴 기회가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효도할 날도 오고,
그동안 받았던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았고, 어머니는 먼저 떠나셨다.
그래서일까. ‘초혼’을 들을 때면 눈물이 난다.
노래가 슬퍼서만은 아니다.
그 노래 속에 내가 미처 다 표현하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후회가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이제 와서 불러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노래를 들으며 어머니를 생각하고, 마음속으로라도 어머니를 불러 봅니다.
평생 자식들 걱정만 하시다가 떠나신 어머니.
막내인 저를 누구보다 걱정하시던 어머니.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 없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제 마음속에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제가 살아가는 동안 영원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 계실 것입니다.
오늘도 장윤정의 ‘초혼’을 들으며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